[뤀슽] 크리스마스에는 건배하세요

뤀슽 크리스마스 조각글


당신과 어떤 삶을 바라냐고요? 당신도 참… 이런 상황에 그런 걸 물어볼 눈치는 있었군요. 자, 입을 벌려요. 체리를 말려봤으니까. 이걸 먹어야 답을 해줄 거예요. 너무 바짝 말렸는지 딱딱해서, 씹기에는 조금 힘들 테지만…. 앗, 무서운 표정. 왜 이런 걸 먹이냐는 표현이겠죠? 그거야…

“평범한 삶을 바라니까.”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답을 외치면 어떡해요? 못 말려라…. 음, 정답이라고 하기도, 틀렸다고 하기도 참 애매한 답을 내네요, 당신은. 왜, 내 붉은 드레스는 마음에 들지 않아요? 나름대로 시기를 맞춰 본 건데…. 왜요, 이 거룩한 밤에 너무 도발적인 색인가요? 당연히 나는 잘 보일 사람이 있으니까 이렇게 입었죠. 당신의 얼굴색이 조금이라도 변하길 기대했다고 할 수도 있겠네요. 그럴 리 없겠지만! 나는, 그러니까, … 내 정신 좀 봐! 기껏 구해둔 오리를 태우게 생겼어요. 자, 이리 와요. 날 좀 도와줘요. 화덕에서 오리를 꺼내는 거예요, 이 정도는 할 수 있죠? 해본 적 없다고요? 아, 도련님이란! 그럼 이참에 해보는 거예요…. 크리스마스 만찬은 요리사가 해주는 것도 참 괜찮지만, 직접 준비하는 것도 꽤 재미있답니다. 불 속을 걸어 다니라 해도 걸어 다닐 사람인데 고작 화덕이 뭐가 무섭다고. 어, 조금 웃었다. 방금 내 말이 어디가 웃겼죠? 아, 그 불을 낼 무시무시한 악당 마녀가 나라서 그런가요? 그만 웃고 오리나 꺼내 줘요! 소스를 준비할 테니까….

“조금만 어울려 달라, 그런 말이겠죠….”

말귀는 참 잘 알아듣는다니까. 아, 혹시 새로 산 식탁보 어디 뒀는지 기억해요? 오늘 같은 날 쓰려고 사둔 건데 영 보이지 않네. 식탁을 보라고요? 아, 이럴 수가. 이미 깔아놨던 걸 왜 까먹었을까? 이번에는 더 크게 웃으셨네요… 내가 당신의 웃음이 될 수 있으면 기뻐야 하는데 왜 이리도 얄미운지. 그 접시 이쪽으로 줘요! 바로 식탁 위에 올리는 게 좋겠어요. 여기 가운데에다가 두고… 당신, 어디 가요? 그쪽에는 음식이 없는데…. 이게 뭐예요? 꽤 근사한 백포도주잖아요. 방금 나갔다 온 게 이거 때문이었나 보네요. 이 영악한 사람을 어쩔까…. 당장 앉혀서 잔을 부딪쳐야 정신을 차리겠어요! 자, 내 옆에 앉는 거예요…. 여기가 벽난로랑도 가깝답니다. 잔은 당신이 채워 줘요. 건배하는 거예요….

“당신을 위하여.”

창밖으로 아직도 인산인해인 크리스마스 축제가 보인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그는 조금 따른 브랜디를 입에 털어 넣고는 곧장 후회한다. 굳이 그런 사람을 위해 건배를 외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반, 그런 날도 있다는 생각이 반이다. 나름 평범한 삶을 바랐을지도 모르지, 그런 사람도, 나름 평범한 삶을…. 그렇다면 그는 바라는가, 평범한 삶을? 만약 평범한 삶이 주어졌다면 평범하게 살았을 것인가? 크리스마스에는 오리를 굽고, 연인과 시간을 보내고… 그런 삶을. 뭐, 그런 삶이 애초부터 주어졌다면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에 있어서 딱히 그는 그런 평범함을 바라지 않는다. 이런 궁상에 현실도피만큼 어리석은 짓이 또 어디 있다고. 가정은 의미가 없다. 후회도, 바꿀 수 없는 일에 대한 미련도… 하지만, 어떤 정상적인 세계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지… 여기가 아닐 뿐. 여기는 아직도, 이상한 세계니까…. 그럼에도 그는 안다. 이 세계는 그의 세계이다. 그리고 그들은, 북적이는 크리스마스에 연인이 서로를 알아보듯 한눈에 상대가 누군지 알아본 불쌍한 사람들일 뿐이라는 것도, 그는 안다.


메리크리스마스!